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했다. '뇌병변(腦病變)'이라는, 일반인에겐 생소한 질병 탓이었다.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경색, 뇌졸중 등을 아우르는 말로, 뇌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다양한 신체적 장애를 통칭한다. ▶얼짱 수영스타의 탄생 대학 진학 후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절감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170cm의 큰 키와 늘씬한 몸매에 예쁜 얼굴까지 겸비한 디자인 전공자 여학생에 대해 호감을 보이던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걸음걸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엔 하나 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학점도 우수했고 공모전 입상 실적도 충분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인생 항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돌파구는 의외의 방향에서 나왔다. 2006년 체육을 전공한 지인의 권유를 받아들여 수영으로 재활을 시작했다가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하루게 다르게 느는 수영 실력을 보며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정식으로 선수 등록을 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대신 수영선수로 거듭났다. '얼짱 수영스타' 김지은(28·부산장애인체육회)은 그렇게 탄생했다. ▶비장애인과 경쟁하다 수영선수로 거듭난 이후 행보는 '일취월장'이라는 사자성어로 갈요약할 수 있다. 2006년 장애인 전국체육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1년 뒤 지상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8년 제2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는 등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장애인 체육의 얼굴'로 발돋움했다. 김지은의 진가는 국제 무대에서도 빛났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자유형 50m와 100m, 400m, 배영 100m 등 출전한 4종목 모두 결선에 올랐다. 대한민국 장애인 수영 사상 최초로 거둔 성과이자 쾌거였다. 장애인 수영을 평정한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했다. 2009년 4월 대한수영연맹에 선수 등록을 마쳤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경쟁하고픈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입상권과의 기록 차는 제법 났지만, '벽'을 허물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올 1월에는 부산시 장애인체육회 발족과 함께 소속 선수로 뛰게 됐다. 이 역시 장애인 선수로는 최초다. 안정된 생활 기반을 갖추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김지은은 "단지 걷기만 하는 것도 힘겨웠던 시절이 있었다. 수영을 통해 재활이 순조롭게 이뤄지면서 몸이 건강해졌고, 새로운 삶의 문을 열 수 있었다"면서 " 수영은 재활의학계에서 최고로 손꼽는 운동이다. 나의 성공 사례가 장애인 수영 대중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 체육의 선진화를 위해 김지은의 무한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열린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착실히 대비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 장애인 체육을 대변할 수 있는 행정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2009년 신라대 체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며 석사 타이틀을 달았다. '12주간의 수영 운동이 지적 장애아들의 신체 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논문도 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은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APC) 위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한 명도 없다"고 언급한 그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 장애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해 후배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며 환히 웃어보였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 = 대한장애인체육회